불교미술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매개체로 그려지고 장엄되던 불상과 불화, 불구들은 시간이 흘러 부처님을 어떻게 조형화했느냐, 또한 부처님의 말씀을, 세계를 어떻게 그려냈느냐에 따른 시각적 미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하나의 전문적인 조형예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즉, 사찰의 전각 안에서의 불상과 불화가 아니라 갤러리나 미술관에서의 불상과 불화를 바라보게 되면서 변화된 공간과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 역시 불상과 불화에 예배드리는 불자가 아니라 미술품을 바라보는 관람자라는 역할로 변화한 것이다. 이건 비단 불상과 불화뿐만이 아니다. 불교와 관련된 여러 분야마다 작가가 등장하게 되면서 작가에 의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미술로 변하였다. 근대에 들어서 등장한 사진, 설치미술 등과 같은 다분한 현대적 미술의 범주는 불교적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른 시각적 잣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하나의 총체적 의미의 부분이었던 부문들은 작가란 이름에 의해 세분화, 특성화되면서 이것을 과연 예배드릴 수 있는 종교성이 있는가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종교미술이라는 특성 때문에 종교미술의 일차적 기능을 염두해 두고 바라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현대미술의 의미로서 작가주의에 의한 미술품으로 바라봐야하는지에 대한 논의인 것이다.
 
한편 미술이라는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독립된 부분으로 인식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문물이 일본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일반미술이라는 분야가 근대화되는 속도와 더불어 발전했던 것과는 달리 불교미술은 종교라는 틀 안에서, 사찰이라는 틀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이러한 불교미술의 바깥세상으로의 외출은 공모전 등의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서 수동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사실상 일반미술의 분야와는 다른 더딘 속도의 행보를 해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오래된 역사성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짧은 일반미술에 비해서는 그 잠재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단을 비롯한 단체나 협회에서 제도화된 장치들을 통해 불교미술이라는 여러 장르의 다양한 발전을 모색하고, 종교미술의 특성인 경배대상으로서의 종교미술이라는 특성을 한계로 인식하지 말고 오히려 극복해야 할 점으로 인식한다면 불교미술의 향후 방향은보다 더 긍정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몇 십여년 전부터 현시점까지 많은 작가들과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흐름을 읽어내기 힘들다는 것은 바로 불교미술의 종교성을 한계로 인식한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