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3-06 16:08
부설거사의 '팔죽시'가 전하는 메시지
심상훈
63 20-03-06 16:08  

서기 647년 신라 선덕여왕 때, 서라벌에서 태어 난 부설(浮雪)은 5세 때 불국사에 출가하였으며, 원정(圓淨)선사의

제자가 되어 7세에 법문에 통달할 정도로 재주가 비범하였다.  부설은 자신의 도반(道伴)인 영희, 영조와 함께

지리산을 돌아 변산 능가산 법왕봉 아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여러 해 수도를 하다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을
순례하기 위해 강원도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가던 도중에, 김제 만경들 한 불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집에는 벙어리로 태어난 18세의 딸, 묘화(妙花)가 있었습니다.
묘화는 부설을 보고는 한 눈에 반했고 법문을 듣고는 닫혔던 말문이 열리더니, 이내 청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부설은, “수행자로서 어찌 아녀자와 연을 맺겠는가. 장부의 뜻을 꺾으려 하지 마시오”하고
승려의 본분을 들어 거절합니다.  묘화는, “중생을 구제한다면서, 눈 앞에 있는 소녀의 소망 하나를 들어주지
못하십니까.  이 몸이 죽게 되면, 중생 구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묘화의 간청에, 부설은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소녀의 청을 받아들여 부부가 되었습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본 영조와 영희는 크게 실망하며 부설을 비웃고, 오대산을 향해 길을 떠났고 부부는
아들, 딸 남매를 낳고 살았습니다. 그 후, 부설은 별당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옛 도반인 영조, 영희 스님이 갔던 길을 돌아와 부설을 측은하게 바라봅니다.
이 때, 묘화 부인은 “어디 한 번 도력(道力)을 겨뤄 보시지요” 하고는 3개의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서
줄에 매달아 놓고 “그릇을 깨트리되 물은 쏟아지지 않는 것으로 서로의 공력을 시험해 보시라”고 권합니다.
조, 영희 스님이 차례로 그릇을 쳐서 깨뜨리자, 그 안에 있던 물도 쏟아져 버립니다.
이어서 부설의 차례가 되자, 그릇은 깨졌으나 물은 그릇의 모양 그대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설은 두 스님에게, “진성(眞性-참 나)은 신통,영묘하여 밝음이 항상 안에 머물러 있으니, 마치 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며 “참된 법신은 생사(라는 그릇, 육신)에 붙들리지 않고 여여하다”고 법문을 읊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바 없으니, 분별이 없고 (目無所見無分別)
 귀로 소리 없음을 들으니, 시비가 끊어졌네 (耳聽無聲絶是非)
 분별, 시비 모두 놓아버리고 (分別是非都放下)
 다만, 내 마음 속 부처를 보고, 스스로에 귀의한다 (但看心佛自歸依) "

부설이 움직임이 없자 두 도반이 몸을 만졌고, 그는 앉은 채로 이미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영조, 영희 스님이 그를 화장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에 모시고 부도를 세웠습니다.
이후 등운, 월명 남매도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묘화 부인은 가산을 정리하여 부설사를 세우고,
110세 까지 살다가 입적했습니다. 전북 부안군 변산 쌍봉선 아래, 부설암, 묘적암, 동운사 월명암이
나란히 있으니 유래는 그렇습니다.  이곳은 호남의 3대 영지가 되었습니다.

부설거사 일가족의 깨달음은, 성불에 있어 승과 속이 다르지 않음(僧俗不二)을 보여 준 것으로
마치, 연꽃이 흙탕물에 있으나 물들지 않는 이치와 같음을 보여준 것입니다.(暎虛大師集)

부설은 불교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나, 묘화와의 혼인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두어
거사(居士)의 칭호로 달리 불리고 있다.  부설거사의 ‘팔죽시’가 천년의 시공을 지나 어지러운 세상을
사는 오늘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넘어 죽비소리로 다가옵니다. 
부설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면서, 팔죽시(八竹詩)를 선 보인 것인데,

1. 이 대로, 저 대로, '돼 가는 대로' (此竹彼竹化去竹),
2.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3.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 대로' 살고(粥粥飯飯生此竹),
4. 옳다면 옳고, 그르다면 그르고 '그 대로' 보고 (是是非非看彼竹),
5.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賓客接待家勢竹),
6. 사고 팔고 하는 일은 시세대로 (市井賣買歲月竹),
7. 세상 일은 '내 마음대로' 같지 아니하니 (萬事不如吾心竹),
8.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세 (然然然世過然竹)

죽(竹)이란 한자가 '대'로 읽히는 것을 이용하였는 데,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삶을 초탈하여
도통의 경지가 엿보이는 선시(禪詩)입니다.  조선시대 김삿갓도 이런 시를 선 보였으나, 이는 부설의 팔죽시를
흉내낸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출처 : 여성경제신문(http://www.woman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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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선인(先人)의 '메시지'가 있을 터이다,  이는,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다름아닌, 제가 책상 위에 적어 놓고 보는 「브라이언 와이스」가 쓴 책,
'나는 전생을 믿지 않았다' 에서 전하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즉,

"인내와 기다림, 모든 일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 진다, 
우리는 서둘러 꾸려나갈 수 없고,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그대로 되가는 대로), 
.
'사주명리학'은 그 '때' 에 대한 얘기다,   
늘의 사주, 이 달, 올 해, 앞으로 십 년(대운)...은 이렇다, 혹은 저렇다 하는 식이지요.  
제가 살아오는 동안 두 세 차례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큰 일'이란게 저절로 해결되고 있더라, 기적(奇蹟)같은 일이 일어나면서,
힘 안들이고 해결되고 말더라, 그것도 아주 정교한 방식(스케쥴)으로 말이지요. 
아! 큰 일 일수록 이처럼 저절로 되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고, 이 번 글을 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