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3-28 14:50
반야심경을 드디어 풀어내다: 고통이 없다면 즐거움도 없다
심상훈
182 20-03-28 14:50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般若心經 漢字 原文:

    觀     

    舍       

    舍    減...) 


한글 평문 해설: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의 지혜를 실천할 때, 

몸(두뇌)이 지어내는 '모든 것을 (그 반대 짝에) 비춰 봄'으로서 삶의 고통으로 부터 벗어났느니라.

사리자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없다'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니라.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바탕(背景)이 되어 주기 때문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몸(두뇌)이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 

사리자여, 모든 것은 자신의 '절대적인 가치' 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말하노라. 


 - '생겼다' 라는 생각이 없다면 '사라졌다' 라는 생각도 없을 것이고 (不生不滅), 

- '더럽다' 라는 생각이 없다면 '깨끗하다' 라는 생각도 없을 것이다 (不垢不淨),

- '늘었다' 라는 생각이 없다면 '줄었다' 라는 생각도 없을 것이다 (不增不減).

¶ 한자 사전에 나온 不의 뜻:  아니 不   없을 無.  (例) 不可分 = '나눌 수 없음'

.

※ 만물 만상의 '가치(=)', 오직  반대가치(=) 더불어 인식될 뿐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그러므로, 반대가치(,)를 없애려 들지 말라. 그것이 "자비=사랑=상생"의 참 뜻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자비(慈悲)'는 연기법 사상(思想)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위에 해석해 놓은 '세 줄'이 핵심이고, 반야심경의 나머지 아랫부분은,

'실체, 또는 절대가치란 없는 것이다' 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에 해당합니다,  


조계종 표준해석, 달마대사, 청담스님의 해설도 보았으나, 한결같이 잘못 짚고 있습니다.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을, 위에서 처럼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뭔가 어렵고 난해한 것을 설명하려면, 

"~이 아니다"또는 "그런 것이 아니다"하고 끝낼 수는 없다 ('그럼 뭔데?' 라는 질문이 생김)

 '~이 아니다' 라는 말은, 다른 어떤 주장에 대하여 부정이나 해명을 하는 것으로서,

빈약하고 궁색한 표현이다적극적으로 설명하려"~ 이런 것이다" 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불가(佛家)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을 어떻게 풀이했나?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라고 했다. 그것이 잘못이란 얘기다. 왜 그런가? 

'不'이란 글자를 '아니다'로만 보았다. 그러나 여기선 '없다'라고 해석해야 비로소 의미가 살아난다.

첫째, 경전(經典)의 핵심문구인 데, 고작 '~이 아니다' 라고 해야 했을까?

그것은 아무런 메시지(연기,'참 나',자비 등의)가 없는 맹탕인 것이다.      

 둘째, 고도로 압축된 문장 속에서, '~이 아니다' 와 같이 늘어진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셋째, '공(空)이란 뭣이냐? 라고 운을 뗐으면, 그 다음 글은 '이런 것이다' 가 나와야 맞는다.     

.

※ 만물이 공(空)한 모습(是諸法空相...): 이는 공(空)에 대한 설명일 뿐이요 '참 나' 얘기가 아니다.  

        청담스님 해석은, '불생불멸...' 의 낙처(落處)를 얻지 못하여, 부득이 '참 나'를 원용(援用)했던 것입니다.     

-------------------------    ---------------------------

p/s   

아무도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반야심경'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이른바 '최고의 지혜'란 것이 인류의 행복증진에는 아무런 기여도 못했으니 딱한 노릇이다

'현장'의 '반야심경'은 부적, 주문으로 쓰는 것 말고는 실패작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라' 는 말씀도 공허하기만 하다. 

반야심경을 읽고나서 한 사람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났는가? 뭔 소린 지도 모르는데...?


이제, 그 빛 바래고 낡은 도그마(dogma, 敎理)를 180`반전시켜야 합니다. 즉,

"고통과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라

.

사람은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살 수도 없으려니와, 고통이란게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고통을 극복해 나갈 때, 기쁨(날아갈 듯 개운함)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일병장수(一病長壽)'란 말 처럼, 한 가지 병(病)을 갖고 사는 사람이 오히려 오래 살더라,

¶ 퇴계 이황 1501~1570은 고희(=인생칠십고래희)를 말하던 시절에 골골하면서도 일흔 살의 천수를 누렸다.

'단 칸방' 신혼살림이 초라하지만, 하나 둘 살림이 늘어나면서, 즐거움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괴로움(고통,불편함)이 없는 삶은 기쁨도 없다! 

--------------------

윗 글은 비교적 읽기가 쉬울 겁니다.

이로써, 천 오백 년 동안, 어둠과 먼지 속에 묻혀 있던 '반야심경'의 메시지가 비로소 드러났습니다. 

연기법, 공사상에 대해서 숱한 강연과 설명이 있었으나, 강사나 청중이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선지식, 큰스님, 석학, 교수, 도사, 법사...)은 정각(正覺)을 이루지 못한 채, 혹세무민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