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23 13:29
우선 삼귀의 부터 ....
김영욱
142 20-06-23 13:29  
우선 삼귀의(三歸依)부터 바루어 나갑시다.

부처님께서 잡아함 「존중경」에서 말씀 하시기를.....
“의지하고 존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의 생활은 괴로움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늘 무언가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하고, 정신적 공허를 충족하기 위하여 기대어 의지처로 삼을 만한 곳을 찾기도 합니다. 자연과 우주 속에 강한듯하지만 나약한 연기적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는 절대자를 형상화하여 종교를 만들어 내었고 그에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붙여 평안을 추구하는 안식처로 삼아 기대어 살아가는가봅니다.

어느 날 삶에 대한 회의와 덧없음을 느낀 나의 피난처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하여 그이가 누군가를 알기 위해 불교대학이라는 곳을 듬성듬성 다녔고, 경전반을 거쳤습니다. 이윽고 포교사가 되었고, 전문 포교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나에게 있어서는 학문적 고찰에 더해 수행력으로 지키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불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 보고 듣고 경험함으로 알게 된 많은 내부적 모순과 결코 존중 받지 못할 자들의 가사 입은 모습은 나를 다시금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하며, 이내 회의적인 불자가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 모신 청정도량에서의 협잡과 음모.... 이! 나보다 못한 자들이 어찌!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보에 귀의하여야 합니다.
경전적 근거를 찾자면 상윳따니까야 ‘마하나마의 경’에서
재가신자 마하나마가 세존께 여쭙고 답한 내용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재가신도가 되는 것입니까?”
“마하나마여,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참모임에 귀의하여야 재가신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로보아 불자가 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삼보에 귀의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팔리어(Pali) 원전의 삼귀의입니다.

붓당 사라낭 갓차미(Buddham saranam gacchami)
제가 이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낭 갓차미
제가 이제 담마(法)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낭 갓차미
제가 이제 상가(僧伽)에 귀의합니다.

두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두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두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따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 두띠얌삐(dutityam pi)는 ‘두 번째도 또한’이라는 의미이고,
따띠얌삐(tatiyam pi)는 ‘세 번째도 또한’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의 삼귀의는 이렇게 변형이 되었지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전통적인 한문 번역은 이러합니다.

귀의불 양족존.
귀의법 이욕존.
귀의승 중중존. 입니다.

※ 설명해 보면
귀의불 양족존(歸依佛兩足尊)
복덕과 지혜 두 가지를 모두 구족하신(兩足) 존귀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귀의법 이욕존(歸依法離欲尊)
욕심을 떠나 여읜 존귀한 부처님의 교법, 참다운 진리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귀의승 중중존(歸依僧衆中尊)
수많은 집단과 단체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불교 교단(僧伽) 즉, 불교공동체에 귀의합니다.
이런 의미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지 17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느닷없이 상가(승가)가 ‘스님들’ 이라고 변형되어 불리어 지고 있으니 과연 경전에 철저한 우리 스님들께서 몰라서 이리 번역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승가는 최소 4명 이상의 스님들이 모여 자자와 포살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불자들은 자자와 포살이 있는 청정한 승가공동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스님 개개인이 아니고....

청정한 승가 공동체는 대중이 다함께 계목을 읽으며 자신의 잘못을 점검하고(포살),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허물을 대중스님들께 지적해주길 요청하여 고치고(자자), 대중스님들과 경책과 격려를 주고받으며(대중갈마), 부처님 법을 토론하는 가운데 수행을 점검하며(법담탁마)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 불자 모두는 이러한 승가공동체에 귀의 하는 것입니다.
스님 개개인이 아니고....

부처님께서는 모든 수행자들과 불자들이 사찰에 와서 불법을 배울 수 있도록, 정법이 가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사찰을 공유물로 만드셨습니다. 이는 사찰(승가)이 모든 이들에게 늘 열려 있어, 지쳐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일개 스님이 월권적 권위를 행사하여 농단하는 곳이 아니고..... 공유물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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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모든 불자들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바루어 나가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선!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삼귀의부터 바루어야 하겠지요.

그들이 스스로를 높여 부르며 스님들께 귀의하라고 하고 있음에 권위적 위계를 만들어 내었고, 이윽고 재가불자들이 스님들의 존중받지 못한 일들을 들어 조금만 비판을 해도 '삼보비난' '승가비방'이라는 반응을 보여 탐진치(貪瞋痴)의 삼독(三毒)을 실천하지 못하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어찌 귀의의 대상이라 하겠습니까.

승려 개인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마치 승가를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서는 아니 됩니다. 거룩하지 않은 스님에게 조차 귀의하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불자들이 소심하게나마 반기를 드는 것을 진치(瞋痴)를 보이며 권위적이고 위압적으로 누르려 해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이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협잡이기에 결코 감추어 질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여 포살과 자자의 계기로 삼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법정스님께서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위없는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청정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는 삼귀의를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삼귀의가 아니겠는지요..... 이 불자의 소견입니다. 스님들.....

                              - 능우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