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24 15:58
그래도 우리는 불자이니까. 삼배예경
김영욱
132 20-06-24 15:58  
삼배! 그래도 우리는 불자이니까....

범어로 상가(Sanga)는 부처님께서 만드신 불교의 교단을 말합니다. 상가(Sanga)는 그 운영 방법과 조직에 따라 구성한 화합된 무리가 집단의식을 구현하는 곳이며, 율법에 의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곳입니다. 구성원으로는 비구(남자스님) · 비구니(여자스님) · 우바새(남자신도) · 우바이(여자신도)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있으며, 이를 출가 수행자와 재가 신자로 구분하기도 합니다.〔미성년자까지 포함하여 칠부대중(七部大衆)이라고도 함〕
상가(Sanga)는 오늘날에 승가라 불리기도 하며 삼귀의의 대상입니다.

사부대중의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와 비구니는 속세를 떠나 출가한 독신의 수행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구족계를 받아야 하며 비구는 250종의 계를, 비구니는 348종의 계를 지켜야합니다. 이 출가 수행자는 걸식․탁발하며, 삼의일발(三依一鉢) 이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거나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닦고 부처님 법을 구하여 재가자들의 정신적인 갈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분율〉에서 “출가자는 걸식으로 살아가야 하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걸식으로 해결하여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자신을 낮추는 가운데 수행과 자비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우바새와 우바이는 재가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출가 수행자들을 위해 의복과 음식, 약 등을 제공하여 수행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사부대중은 화합하여 승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256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불생불멸의 부처님 법을 따르고 있으며, 출가하지 못한 재가불자들은 변함없이 출가 수행자들을 보위하며 안위를 챙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변한 것이 있습니다. 재가자들의 지나친 보위 탓인지 넘쳐나는 보시 탓인지 모르겠지만 살찌는 출가자들이 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의일발의 탁발이라는 발심에서 벗어나 탐욕과 탐심이 가득한 가운데 허위와 허세가 넘쳐나는, 육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진 승려.... 스님들.... 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우바이 우바새들은 정사(절)를 찾아 부처님 법을 따르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스님을 만나면 안면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합장 반배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씀을 철저히 따르고 있으며, 삼배를 받는 스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삼배를 올리고 있습니다.

삼배(三拜)라는 것....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왜 머리 깍고 출가를 해서 가사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3배를 해야 하는 걸까요...
학식이 높고 낮고를 떠나, 지위 고하를 무시하고, 연령 차이를 막론하고 왜 저네들은 우리에게 삼배를 하라고 고집하는 것일까요...
법이 높고, 덕이 높아 그 향기에 취해, 절로 존경하는 마음에 3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일방적 요구라 볼 수 있으니 심기가 여간 불편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변해버린 승려들이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도외시하고 탐진치(貪瞋痴)에 절은 모습으로 정사(절)를 직장처럼 여겨 전횡하고 있으면서도 상가(Sanga)의 일원인 우리 재가불자들에게 3배의 절을 올리라 하고 있으니 예법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리하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승려들은 일반인에게 천시와 반말의 대상이었고, 탁발을 다니는 승려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1947년 봉암사 결사가 열리게 됩니다. 성철스님의 주도하에 “오로지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의기투합, 한국불교의 풍토와 위상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은 결사라 하겠습니다.
내용인 즉,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좌선으로 일관하며, 그즈음 절들의 보편적인 생계 수단이었던 불공과 제사 역시 정법에 어긋난다며 일절 받지 않음으로 스님은 무속인이 아니라 수행자라는 인식을 확인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내 놓은 그런.....

여기에서 결사를 주도하던 성철 스님의 일갈이 어쩌면 삼배의 근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보아 언급해 봅니다.
“스님은 부처님 법을 전하는 당신네 스승이고, 신도는 스님한테서 법을 배우는 제자야. 법이 거꾸로 되어도 분수가 있지. 스승이 제자 보고 절하는 법이 어디 있어? 조선 500년 동안 불교가 망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그게 부처님 법은 아니야!
부처님 법에 신도는 언제나 스님들께 절 세 번을 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 부처님 법대로 스님들에게 절 세 번 하려면 여기 다니고, 부처님 법대로 하기 싫으면 여기 오지 말아!
『수다라』 10집에 수록된 성철 스님 법문(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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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불교대학 다닐 때 보다 더 깊이 공부를 많이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스스로 공부하면서 여기에 더해 좌선과 행하는 모습만 더할 수 있다면 승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오로지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라고 하며 어렵사리 정착을 기하고 있는 우리들의 수행도량에서 이즈음은 가르치고 모범 삼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절간에서의 학습이 그리 아쉽지도 않습니다.

성철 스님의 봉암사 결사를 잊은 절간! 출가하여 수계 받은 비구. 비구니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부처님 법을 팔아 허세를 부리는 절간으로 짧은 순간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불과 오래지 않은 지난날에 구걸하듯이 탁발을 다니던 기억을 잊은 것인지, 세상을 비켜나야하는 청정도량에서 오욕칠정을 버리지 못하고 권세를 부리려는 자가 넘쳐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자로서 삼배를 올립니다.
스님들에게 공경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기보다는

- 대각(大覺)을 성취하신 부처님께 공경의 마음을 담은 절
- 깨달음에 안주(安住)하지 않고 중생을 위해 회향하신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절
- 나도 부처님처럼 기필코 성불을 하고 말겠다는 다짐의 절

이렇듯 공경의 마음, 감사의 마음, 다짐의 마음이 담긴 삼배를 올리겠습니다.
(자경스님 말씀 중 인용)

삼배를 받으시는 분께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여 스스로를 돌아보시며 받으시길 바랍니다.
(인용 글입니다. 출처 불명)

【"僧寶란 구족계(具足戒)와 보살계(菩薩戒)를 마치고 맑고 깨끗함을 이루어 보살마하살의 경지에 이른 승려들을 불러 이르는 말이다. 그러한 승려가 아니면서 중생들에게 삼배를 받는 것도 악업을 쌓는 일이다”】

잿빛가사만 걸쳤다 하여 다 삼배를 받을 수 있는 승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승려다운 승려만이 제가불자들로부터 마땅히 삼배의 공경을 받아도 된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참된 부처님의 법을 행하는 승려다운 승려도 아니면서 삼배를 받으면 그것도 큰 악업을 쌓는 일이라 반드시 인과법의 도리에 의해 마땅한 업을 받을 것입니다.

...........라는 출처불명의 말이 있어 퍼 옮겨 봅니다.

                                              - 능우 합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