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2-08-21 10:41
오는 23일 하안거 해제, 종정예하 해제 법어
관리자
2,113 02-08-21 10:41  
1. 지난 5. 26. 하안거 입제에 들어간 스님들이 3개월간의 정진을 마치고 오는 8. 23 다시 중생속으로 만행을 떠나게 됩니다.

2. 전국선원수좌회가 해제를 앞두고 발간한 '임오년 하안거 선사 방암록'에 따르면 전국 89곳의 선원에서 2,145명의 스님이 정진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3. 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매년 전국 80여 개 禪房에 2천 여 首座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이 房付(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 절차)를 들여 수행하고 있으며, 지정된 선방 이외에 토굴이나 일반사찰에서도 이 기간 동안에는 모든 스님들이 수행자로 돌아가 수행에 매진하게 됩니다.


별첨 : 각 총림 하안거 해제법어 1부(보도자료실에서 볼수 있습니다)

눈섭이 남아 있는가
조계종정·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보장무인구불개寶藏無人久不開하니 홀연염출진의시忽然捻出盡疑猜로다.
기인상려래수가幾人商旅來酬歌요 교역불성공자회交易不成空自廻로다.
보배창고에 사람없어 오래토록 열지 않다가 갑자기 끌어내니 모두가 의아해 하도다.
몇사람의 장사꾼이 값을 묻건만 흥정하지 못하고서 그대로 돌아가는구나.

취암영참翠巖令參선사께서 하안거 해제날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안거가 시작된 이후로 여러분을 위해 서툰 법문 늘어 놓았는데 그래도 이 취암의 눈섭이 남아 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서 종전보복從展保福스님이 말했습니다.
"작적인심허作賊人心虛라. 도둑질하는 놈은 늘 근심이지."
그러자 장경혜릉長慶慧稜스님이 말했습니다.
"생야生也라. 눈섭이 남지 않기는 커녕 자꾸 자라고 있군."
이에 운문문언雲門文偃스님이 덧붙였습니다.
"관關이라! 관문이다."

취암영참스님은 당唐나라 때 선승으로 호주湖州 출신입니다. 영파부寧波府 명주明州 땅 취암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영파지방은 보타낙가산을 참배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절강성浙江省의 항구도시입니다.
취암영참스님은 장경혜릉·운문문언·보복종전·현사사비玄沙師備등과 함께 설봉의존雪峰義存스님의 법을 이었습니다.
이 취암미모翠巖眉毛의 공안문답은 스승과 제자간이 아니라 사형사제끼리 주고받는 법거량입니다.
《선문염송》에는 취암영파 스님과 관련된의 '취암참견翠巖 見' 이라는 화두가 하나 더 전하고 있습니다.
취암의 회상에 어떤 납자가 왔다가 선사를 만나지 못하고 내려가서 대신 주지를 만났습니다.
이에 주지가 말했습니다.
"선사를 뵈었습니까?"
"아니오."
그러자 주지가 개를 가르키면서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선사를 만나려고 하거든 저 개에게 절을 하시오."
그러자 그 납자는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선사께서 돌아와 그 일을 전해 듣고서는 말했습니다.
"어찌해야 그렇게 대꾸하지 못하는 꼴을 면하겠는가?"

이 '눈섭'이라는 말은 조사어록에 많이 등장합니다.
가장 유명한 말은 '양미순목揚眉瞬目'이라는 말입니다.
눈섭을 치켜뜨고 눈을 깜박인다는 말인데 일상생활의 동작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이는 종사宗師께서 일상적인 것으로 학인을 지도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눈섭은 선지禪旨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남악회양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는 6명입니다.
도일道一스님은 마음을 얻었고, 지달智達스님은 눈을 얻었고, 상호常浩스님은 눈섭을 얻었고, 신조神照스님은 코를 얻었
고, 탄연坦然스님은 귀를 얻었고, 엄준嚴峻스님은 혀를 얻었다고 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놀라는 경우에도 눈섭이 다 빠져버립니다. 그 이야기는 '단하소불丹霞燒佛'에 나옵니다.
단하천연丹霞天然선사가 혜림사惠林寺에서 하룻 밤을 묵을 때 일입니다.
방이 매우 추웠으나 장작이 없는 까닭에 법당의 목불을 가져다가 방을 데웠습니다.
이튿날 원주스님이 이 사실을 알고서 단하스님을 매우 꾸짓는 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처님을 다비해서 사리를 얻으려고 합니다."
"나무토막에 무슨 사리가 나오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나를 꾸짓습니까?"
이에 원주스님은 그 자리에서 눈섭이 몽땅 빠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취암미모' 공안에 '눈섭이 남아 있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중국의 속설에는 거짓말을 하면 눈섭이 다 빠져버린다고 합니다.
취암스님은 자기의 하안거 한 철 동안의 법문이 불조佛祖의 뜻에 어긋났다면 눈섭이 없어져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하여 이미 안목이 열려버린 사형사제들이 한마디씩 한 것입니다.
그런데 취암스님의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세 스님의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고인들이 한 마디를 던질 때는 그냥하는 말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납자를 제접하는 도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투철하게 알아 차린다면 고인들이 농부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자의 밥을 빼앗는 솜씨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송나라 때 《서장書狀》을 통하여 간화선을 정립한 대혜종고大慧宗 선사는 '취암미모'에 대하여
이렇게 착어着語를 한 바 있습니다.
대혜 선사가 법상 위에 오르자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취암스님께서 하안거가 시작된 이후 여러분을 위해 서툰 법문 늘어 놓았는데
그래도 취암의 눈섭이 남아 있느냐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자수自首하는 사람은 그 죄를 풀어 주느니라."
"그렇다면 도둑질하는 놈은 늘 근심이라고 한 뜻은 무엇입니까?"
"당나귀는 마른 땅을 골라 오줍을 싸느니라."
"장경스님은 '자랐다'라고 하였고 운문스님은 '관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쪼개진 쓰레받기 하나가 몽당빗자루와 맞섰느니라."

이제 해제일을 맞이하여 만행길에 나서는 납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산승이 한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운문·장경·보복 스님을 살펴보면 그들은 너무나도 취암스님의 수행경지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디마디 얽힌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벗어날 방법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서로 법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취암스님의
말에 기특함이 없다면 운문·보복·장경 세스님이 시끄럽게 주고 받으며 지껄인들 무엇을 하겠습니까?

보복스님게서 '도둑질 하는 놈은 늘 근심한다'고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언어문자로서 그 어른들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만약 해제대중이 뜻을 일으키고 생각을 낸다면 그대들의 눈동자가 뒤바꿔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보복스님이 한 이야기 한토막이 취암스님의 발목을 부러뜨렸음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장경스님의 '눈섭이 남지 않기는 커녕 자꾸 자라고 있군'이라는 말은 장경스님이
스스로 취암스님의 견해를 뛰어넘은 말입니다. 사실 두 스님 모두는 서로에게 각각 뛰어넘는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눈섭이 자라고 있다고 말했겠습니까?
이는 선지식 앞에서 금강왕 보검을 대뜸 사용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범부의 견해를 타파하고 득실과 시비를 끊어버려야만이 비로소 장경스님이 그들과 주고 받은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운문스님이 '관문이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기특한 말입니다. 하지만 참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경지입니다.
운문스님은 한 글자로 선법禪法을 말하면서 납자들을 제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록 한 글자이지만 그 속에는 모든 구절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고인들이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주고 받은 말들을 살펴보면 중요한 것은 즉 한마디 해 붙일 때의 모양입니다.
그 선사들께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뜻은 결코 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 밝은 납자라면 설사 해제를 하여 만행
중이라고 할지라도 하늘과 땅을 비추어볼 수 있는 솜씨가 있어 그 자리에서 사방팔방으로 영롱할 것입니다.

보복운문야保福雲門也여 수비귀순垂鼻欺脣이로다.
취암장경야翠巖長慶也여 수미영안脩眉映眼이로다.
보복과 운문이여! 늘어진 코와 속이는 입술이요
취암과 장경이여! 긴눈섭에 빛나는 눈동자로다.
2546(2002) 7. 15 하안거 해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