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종정예하 정유년 하안거 해제 법어

大韓佛敎曹溪宗 宗正猊下 丁酉年 夏安居 解制 法語

 

 

불기2561(2017)86(615)


 

 

 

0000종정예하근영 최종(20131008).jpg

 

 

   

 

犀因翫月紋生角(서인완월문생각)이요

象被雷驚花入牙(상피뇌경화입아)이로다

물소가 밤에 달을 구경하니 뿔에서 문채가 남이요,

코끼리가 우레 소리에 놀라니 꽃잎이 어금니 안으로 들어감이로다.

 

일구(一句)의 진리를 파헤치는 이 최상승의 선법(禪法)은 알기가 무척 어렵거니와 담담해서 별 맛이 없는 고로, 소인지배(小人之輩)는 대개 소승법(小乘法)으로 흘러가고 마는 것이라.

그러나 이 법을 닦아 행()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부처님의 大道의 진리를 얻을 수 없음이라.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는 허공보다도 넓고 넓어 가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외도(外道)들이 비방하려고 해도 비방할 수가 없고 칭찬하려고 해도 칭찬할 수가 없는 법이다.

 

대중이 이렇게 모여서 삼하구순동안 불철주야 참선정진을 한 것은 바로 이 심오한 진리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다.

 

 

금일은 삼하구순(三夏九旬)의 날들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하안거 해제일이라.

만약 대중들이 구순안거(九旬安居)동안에 목숨을 떼어놓고 모든 반연(攀緣)과 습기(習氣)를 다 놓아 버리고 참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들었을진대는, 개개인이 모두가 장부(丈夫)의 활개를 쳤을 것이다.

 

산승이 회상(會上)을 열어 몇 번이나 결제를 하고 해제를 맞이 했던가!

다시금 해제일이 돌아온 금일, 과연 이 해제일을 맞아 장부의 활개를 칠 자가 있는가!

그런데 󰡐알았다󰡑고 당당하게 나오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니, 대체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온갖 분별(分別)과 망상(妄想)과 혼침(昏沈)에 시간을 다 빼앗겼기 때문에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그러니 그 허물을 뉘우치고 각성(覺醒)하여, 해제일이 되었다고 이산 저산으로 정신없이 유랑(流浪)을 다니거나 화두를 걸망에 넣어두고 불수(不修)의 만행(萬行)으로 정진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 됨이라.

이 공부란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해서 정진의 열기를 식히지 않아야 함이라. 그렇지 않으면 안거의 수만 늘어날 뿐, 수행의 진취가 없는 것이 이 때문이라.

 

다시금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마음속의 모든 반연을 다 쉬어 버리고 오로지 화두와

씨름하고 씨름해서 한 생각이 간단(間斷)없이 지속되게끔 하여야 할 것이라.

한 생각이 지속되는 이 삼매(三昧)에 들게 되면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진리의 눈을 뜨게 되어 있음이라.

 

수행자는 대오견성(大悟見性)만이 해제하는 것이라고 다짐하고 조금도 방심하지 말고 항상 발심하고 발원하여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참구하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만번 하여야 할 것이라.

 

 

부처님께서 하루는 천이백 대중에게 법을 설하시기 위해 법상에 오르시어 말없이

앉아 계셨다.

이때 문수보살이 나와서 예() 삼배를 올리고는,

자세히 법왕법(法王法)을 보니 법왕법이 이와 같습니다.”하니 부처님께서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말없는 이 가운데 큰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산승에게 누군가

법왕법을 보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라고 한다면,

 

산승은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하다.” 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른 눈을 갖춘 이가 있어 한마디를 바로 이를 것 같으면,

그때라야 법상에서 내려가리라.

 

또 하루는 부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는데, 한 외도(外道)가 찾아와서 여쭙기를,

말로써도 묻지 아니하고 말없이도 묻지 아니 합니다.”하니,

부처님께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계셨다.

 

이때에 외도는 부처님께서 양구(良久)하신 뜻을 깨닫고,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 미운(迷雲)을 헤쳐 주시어, 저로 하여금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며 큰절을 하고 떠났다.

 

그때에 부처님 곁에 아난존자가 있었는데, 아난존자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일대시교(一代時敎)를 하나도 잊지 않고 그대로 기억할 만큼 총명하였기에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했었다.

 

그러한 아난존자이지만 부처님께서 양구하신 뜻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르겠거니와, 또 외도가 말한 뜻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외도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부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앉아

계시는데, 진리의 문에 들었다고 합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영리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갈 길을 아느니라.”라고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승(山僧)이 당시에 부처님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부처님과는 다르게 답하였으리라.

말로써도 묻지 아니하고 말 없이도 묻지 아니합니다.”하는 외도의 물음에 부처님께서는 양구(良久)하셨지만

 

산승은,

완자낙지(椀子落地)하니 접자성칠(楪子成七)이로다.”

주발을 땅에 떨어뜨리니 조각이 일곱이 남이로다.

라고 하였을 것이다.”

 

또 외도가

부처님께서 대자대비로써 진리의 문에 들게 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하고 큰절을 한 데 있어서는, 이 주장자로 이십 방()을 때려서 내쫓았으리라.

 

만약 그렇게 하였더라면 그 외도는 외도의 소굴에서 영원히 벗어났을 것이다.

 

아난존자가 지켜보고는

외도가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진리의 문에 들었다고 합니까?”하고 묻는 데에,

산승은 이렇게 말하였으리라.

아난아, 차나 한잔 마셔라.”

 

 

중국의 오대산(五臺山)은 예로부터 문수보살 도량(道場)이라고 하여, 문수보살을 예배하고 친견하고자 하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당시에, 이 오대산 가는 길목에 한 노파가 있었다. 오대산을 찾아가는 스님들이 그 노파에게 오대산 가는 길을 물으면,

 

노파는 "바로 쭉 가시면 됩니다."

하고는, 그 스님이 너 댓 걸음 걸어가면,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라고 말했다. 길을 묻는 스님들에게 언제나 그렇게 인도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趙州) 선사께 이 일을 말씀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내가 가서 그 노파를 혼내 주겠다." 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어도 지혜의 눈이 열린 이는 말이 떨어지면 바로 그 뜻을

아는 법이다.

 

조주 선사께서 즉시 그 노파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는 다른 스님들처럼 오대산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노파 역시 다른 스님들에게 했던 것처럼

"바로 쭉 가시오."라고 했다.

 

조주 선사께서 몇 걸음 옮기시자,

이번에도 노파는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했다.

 

조주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절로 돌아오셔서 대중들에게,

"내가 그 노파를 혼내주고 왔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부처님의 진리의 눈이 있다.

대체 어느 곳이 조주 선사께서 그 노파를 혼내준 곳인가?

 

산승(山僧)이 그 노파를 보건대는,

백주(白晝)에 도적을 지어 천사람 만 사람을 기만하고 있음이요,

 

조주 선사를 보건대는,

후백(侯白)의 도적이라 하더니, 다시 후흑(侯黑)의 도적이 있음이로다.

 

 

어느 날 조주 선사께서 행각(行脚)시에 한 암자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있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암주(庵主)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주먹을 내미니,

조주 선사께서

"물이 얕아서 이곳에는 배를 대지 못하겠노라." 라고 말씀하시고는 가버리셨다.

 

또 어느 암자를 방문하셔서,

"있고, 있느냐?"하시자, 이 암주(庵主)도 역시 주먹을 내밀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주 선사께서,

"능히 주기도 하고, 능히 빼앗기도 하며,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 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배(禮拜)하고 가셨다.

 

두 암주(庵主)가 똑같이 주먹을 내밀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보는 바가 다르냐!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의 기봉(機鋒)을 알겠는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頭長三尺知是誰(두장삼척지시수)

與奪臨時自由人(여탈임시자유인)

석 자 머리를 가진 분을 아는 이가 누구냐?

때에 다다라 주고 뺏기를 자유로이 하는 이라.

 

 

필경일구(畢竟 一句)는 작마생(作麽生)?

(필경에 진리의 한마디는 어떻게 생각하는 고?)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千言萬語絶盡處(천언만어절진처)

手忙脚亂也不知(수망각란야부지)

천마디 만마디가 다 끊어진 곳은

손이 떨리고 발이 떨려서 도저히 알 수가 없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