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번째 일방적 관점에 의해 사실을 왜곡시킨 부분들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에 앞서 최근 1994년과 1998년 두차례에 거쳐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보여준 한국불교의 폭력적 행위에 대하여 과거 불교를 이룩해 온 많은 스님들과 신도 그리고 현존하는 많은 수행자와 순수한 신도들 나아가 불교를 이끌어갈 후손들에게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한다. 특히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는 불교가 갖는 비폭력과 자비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모습을 세계인에게 보여준 스님들은 부끄러운 자신들의 모습에 통곡하고 통곡한다. 뿐만 아니라 두차례의 폭력적 사건을 주도한 스님들은 모두 교단밖으로 추방당했음을 밝혀둡니다.

① '거대 동상건립이 신심의 표출인지 아니면 종교를 위장한 축재욕의 발현인지'에 대하여
거대 불상건립은 생존시 성철스님과 자운스님이 발원한 것 은 사실이다. 두 분 스님은 최근까지 가장 존경받던 큰스님으로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았다. 이분들의 사상과 덕망을 신뢰한다면 '경제적 부'의 추구보다 한국불교의 장래를 위한 '종교적(신앙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판단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세계 모든 국가들에는 지금 우리가 경탄하고 있는 거대 유적이 존재한다. 거대유적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큰스님과 왕권이나 거부장자가 함께하여 이룩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가장 많은 사찰을 창건하고 거대한 불교유적을 이룩해 놓았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또한 고려시대 징기스칸이 일으킨 전쟁의 재난속에서 창과 방패대신 스님들이 이룩한 거대 불교 문화유적이다. 위와같은 거대 불교 문화 유적들을 발상하고 이룩했다는 이유로 존경받던 스님들을 후학들이 수경스님처럼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으며" 선인들의 사려깊고 순수한 뜻을 '부의축적'을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매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부정적 사고를 가진 일부 사람들의 일방적 주장에 뉴욕타임즈지가 그렇게 쉽게 동조해야 하는가?

② '한국 승려들은 남의 사업을 파괴하고 격렬히 세력 싸움을 벌이는 폭력세계의 활동에 익숙해지게 되었다'에 대하여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정통 보수 종단인 조계종의 승려는 11,000여명이다. 그 중 3,000여명은 19개 승가대학에서 수학(修學)중인 학승(學僧)이고 4,000여명은 90여개 선원에서 참선 수행중이다. 기타 수행자는 1,500여명이다. 정치적파당과 상업주의적 야욕과 위험에 빠질 가능성의 위치에 있거나 노출된 스님은 사찰주지와 중앙종단 운영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수는 2,500여명에 불과하다. 모든 주지와 중앙종단 운영자가 다 정치적 파당과 상업주의적 야욕에 눈이 멀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극히 소수의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뉴욕타임즈는 일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 승려 전체를 '폭력세계의 활동에 익숙한 사람들'로 매도하고 있다. 또한 승려 개인이 우발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로 국가 법률에 의한 처벌을 받은 경우는 있지만 승려들이 국가 법률에 의해 처벌 받을 수준의 '조직적이고 암흑가에서 활동'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례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한국 불교 성직자를 '조직적인 암흑가' 사람들과 동일시 하고 있다.

③ '정부는 종단내 새로운 집단들을 선정하여 이들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한다'에 대하여
뉴욕타임즈는 "정부의 편의"와 기사 중간 부분에서는 '유력한 정치가라고 추정된 익명의 기부자'와 같은 표현으로 해인사 불상건립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애써 강조하려한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 해인사는 정부나 정치가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으며 발표한데로 노(老)사업가의 기부금 60여억원과 많은 신도들의 시주금을 재원으로 사용할 것이다.

④ '한국에서 속세를 포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에 대하여
뉴욕타임즈는 그 이유로 '나라가 워낙 작고 점점 더 작아지고 사찰의 유원지화와 편리한 생활을 지속시키려는 승려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 근본원인은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가치와 정서를 유지시킬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서구적 가치 즉 인간의 욕망을 정당화 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의 팽창과 이로 인한 가치혼란이다. 그리고 제시한 두가지 이유는 인정한다하더라도 "나라가 작은 것"이 진정한 출가(속세를 떠남)를 이룩하지 못한 요인으로 해석한 것은 불교의 출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며 국토가 큰 나라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작은 나라에 대해 갖는 우월주의적 사고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된 모습에 불과하다. 출가는 공간적 의미보다 사물을 보는 관점과 삶의 가치에 대한 의식의 전환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3. 뉴욕타임즈에 대한 우리(대한불교조계종)의 요구

① 반론과 사실 설명에 근거하여 기사의 정정을 요구한다.
② 우리가 작성하여 제출한 반론문을 게재하여 줄 것을 요구한다.
③ 폭력세계 활동에 익숙하지 않고, 진정한 출가(세속을 떠남)를 이룩한 절대다수의 한국불교성직자(수행자들)에게 정중한 예의와 품위있는 방법으로 사과해 줄 것을 요구한다.



불기 2545(2001)년 7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대변인 현 고